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역시 나의 길은 이것뿐

아름형 2012. 3. 14. 21:27
그냥 tv를 보는게 좋았다.
별다른 이유도 특별한 사연도 없다.
단순히 tv를 보고 있으면, 웃기도하고 울기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5년 전, 내가 9살이었을 때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문방구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마니또란 팜플렛을 보며 정일영씨의 기도란 노래를 부르며 등하교를 하곤 했다.
tv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아마 가을동화를 통해였던 것 같다.
'저런걸 만들면 얼마나 재밌을까'
'송혜교가 진짜 백혈병에 걸린건 아니겠지?'
이런 궁금함과 설렘에 초등학생부터 PD를 꿈꿔왔다.

다른 미래는 꿈꿔본 적이 없었다.
바뀐거라곤 당시엔 드라마PD를, 지금은 시사교양PD를 원한다는 점이다.
여군이 되길 바라셨던 엄마의 부탁에 고등학교 시절에 준비했었지만 별 흥미는 없었다.
말도 안되지만 붙으면 어떡하냐라는 걱정도 했었다.

그렇게 막연히 PD를 마음에 품고 대학 졸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졸업이 가까워지니 불안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보다못해 엄마가 뭐먹고 살고싶냐는 물음에 하고싶은게 없다고 했다.
'엄마 난 진짜 PD가 되고 싶은데, 준비된 것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어'
라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하고싶은게 없다고 내질러 버렸었다.
그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자식을 잘 못 키웠다는 자책과 꿈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많이 안타까워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유일하게 자부하는건 별탈없이 사춘기를 보냈다는 사실인데, 취업을 앞둔 성인이 이제서야 사춘기를 앓는 것 같다.

KBS공채입사 홍보 영상이 날 설레게 한다.
잘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오늘이 있기까지 내가 하고싶은 일이 뭘까라는 고민은 숱하게 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 어떨지.
아무리 좋은 직업을 다 대어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

오롯이 PD라는 단어만 나를 들뜨고 흥분시킨다.
내 길이 명확해진 기분이다.
그 길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 언제가 될진 정확히 장담할 수 없다.
되도록 빨리 걷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직 운동화끈을 묶는 단계이지만 완전히 매여지는 순간부터 전력질주다.
역시 내 길은 이 길뿐이었다.
9살부터 지금까지 쭈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