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열등감, 그 벗어날 수 없는 덫

아름형 2012. 5. 5. 13:10
대학생이 되어서 게으름뱅이로 추락했지, 중고등학생 때에는 꽤나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아봤자 공부밖에 더 했겠나 싶지만, 당시엔 그게 내 전부였다.

그래서 난 항상 라이벌이 있었다.
나보다 약간 잘하는 친구를 남몰래 라이벌로 삼곤 했다.
라이벌이 있으면 좋은 점?
긴장의 끈이 풀리지 않게 죽어라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 애가 무슨 문제집을 푸는지, 시험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이런 사소한 소식이 나에겐 일상의 자극이었다.

물론 그 애를 점수로 앞질렀을 때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최고가 아니어도 라이벌을 이긴다는 건 그만큼 나를 흥분되게 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항상 이기며 살겠는가.
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운 점수를 갖고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라이벌에게 뒤쳐진다는 것, 나를 패배자로 만드는 스스로의 덫이었다.

대학에 올라와서는 그 정도가 덜 했을 뿐, 라이벌은 여전히 있었다.
학점에 대한 부담감은 적었을지라도 스펙에 대한 패배감은 그 전보다 더 극심했다.
저 애를 이기지 못 하면 취업은 불가능 할 것 같고, 사회 낙오자로 찍히진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젠 진학 고민 대신 먹고사는 고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매번 남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경쟁시키는 건 기쁨보단 열등감이 더 잦게 만들었다.
우린 서로 가는 길이 다른데, 나의 이정표가 아닌 그 애의 이정표를 따르려니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천천히 가면 되는데, 좋아보이는 길만 쫒았던 것이다.

사람에겐 주어진 방향이 각자 있는 것 같다.
그 방향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겉보기에 좋아보이는 길을 무작정 따라선 안 된다.
나도 속세를 벗어난 스님처럼 모든걸 해탈하진 못했다.
아직까지도 대기업 스펙에 어슬렁거리며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이상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살아야지 남을 기준으로 살다간 열등감에 못 이겨 미치는거 아닌가 싶다.

남과 비교하고 견제하는 삶은 열등감이란 덫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과 같다.
벗어나기 힘든 덫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믿고 따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 우연히 내 대학생활의 라이벌을 보았더니, 스스로가 참담해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 길이 맞으니 조금만 더 열심히 가자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이아름 뽜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