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로맨스가 몇가지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헌팅 받아보기, 도서관에서 책 읽는 모습으로 훈남에게 연락처 받아내기, 공원이나 카페에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고독한 분위기 풍겨내기.
뭐 이런 사소하지만 아우라가 펼쳐지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사랑은 꿈꾸지 않는다.
실현 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는 책 속에만 존재하고, 재벌집 외동아들과의 사랑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은 현실적이고, 로맨스는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현재에 충실하여 내 짝을 찾는게 현명한 판단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스펙을 쌓는데 열중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신데렐라가 되기를 바라는 짓은 망상임을 알기에 말이다.
이렇게 사랑에 현실적인 여성들이 순수하게 로망하는 로맨스가 하나 있다.
(아마 나혼자만 바라는 것일수도 있지만?)
바로 오래된 이성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를 여성들은 간절히 꿈꾼다.
요즘 애청하는 드라마가 두 개가 있다.
Tvn에서 방영하는 것으로 '로맨스가 필요해 2012'와 '응답하라 1997'이다.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드라마의 공통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어릴적부터 보아온 이성친구에게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 그 혼란 속에서 찾아내는 진정한 사랑.
곁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친구인데 어느새 이성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때의 감정선의 변화는 여성을 짜릿하게 한다.
주인공은 어찌됐든 바라보고 상상하는 제3자인 여성은 온몸이 찌릿하다.
물론 적게는 몇년 길게는 십수년을 친구로 지내온 사람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만큼 로맨틱하지 않을수도 있다.
연인으로 발전하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엇갈리면 그나마 친구관계도 무너질 것이다.
위험요소가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로맨스를 왜 갈망하는 것인가.
하나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로맨스의 성격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소꿉친구라 함은 유년, 학창 시절을 같이 지내온 사람이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남녀가 절친한 사이로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만약 유지한다고 해도 친구가 나를 이성으로 느껴줄 확률 역시 적다.
같이 보낸 세월속에서 각자의 연애를 마치고 연인이 된다는 것, 실현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거기다 순수했던 학창시절을 함께 해왔던 친구이기에 그들의 로맨스 역시 순수하다.
사회인에 되어서 만난 연인에게선 찾을 수 없는 추억과 공통분모, 투명함이 있다.
결국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는 이런 이유로 여성들에게 로망이 되어버렸다.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로맨스는 언제나 순수해야 한다는 본능이 만들어 낸 상상물이다.
나에게 일어 날 가능성은 이미 사라졌지만, 드라마든 책이든 상관없이 모든 매체에서 만나 꾸준히 상상할 것이다.
이건 언제 꿈꾸어도 마음이 콩닥거리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헌팅 받아보기, 도서관에서 책 읽는 모습으로 훈남에게 연락처 받아내기, 공원이나 카페에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고독한 분위기 풍겨내기.
뭐 이런 사소하지만 아우라가 펼쳐지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사랑은 꿈꾸지 않는다.
실현 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는 책 속에만 존재하고, 재벌집 외동아들과의 사랑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은 현실적이고, 로맨스는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현재에 충실하여 내 짝을 찾는게 현명한 판단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스펙을 쌓는데 열중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신데렐라가 되기를 바라는 짓은 망상임을 알기에 말이다.
이렇게 사랑에 현실적인 여성들이 순수하게 로망하는 로맨스가 하나 있다.
(아마 나혼자만 바라는 것일수도 있지만?)
바로 오래된 이성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를 여성들은 간절히 꿈꾼다.
요즘 애청하는 드라마가 두 개가 있다.
Tvn에서 방영하는 것으로 '로맨스가 필요해 2012'와 '응답하라 1997'이다.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드라마의 공통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어릴적부터 보아온 이성친구에게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 그 혼란 속에서 찾아내는 진정한 사랑.
곁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친구인데 어느새 이성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때의 감정선의 변화는 여성을 짜릿하게 한다.
주인공은 어찌됐든 바라보고 상상하는 제3자인 여성은 온몸이 찌릿하다.
물론 적게는 몇년 길게는 십수년을 친구로 지내온 사람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만큼 로맨틱하지 않을수도 있다.
연인으로 발전하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엇갈리면 그나마 친구관계도 무너질 것이다.
위험요소가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로맨스를 왜 갈망하는 것인가.
하나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로맨스의 성격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소꿉친구라 함은 유년, 학창 시절을 같이 지내온 사람이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남녀가 절친한 사이로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만약 유지한다고 해도 친구가 나를 이성으로 느껴줄 확률 역시 적다.
같이 보낸 세월속에서 각자의 연애를 마치고 연인이 된다는 것, 실현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거기다 순수했던 학창시절을 함께 해왔던 친구이기에 그들의 로맨스 역시 순수하다.
사회인에 되어서 만난 연인에게선 찾을 수 없는 추억과 공통분모, 투명함이 있다.
결국 소꿉친구와의 로맨스는 이런 이유로 여성들에게 로망이 되어버렸다.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로맨스는 언제나 순수해야 한다는 본능이 만들어 낸 상상물이다.
나에게 일어 날 가능성은 이미 사라졌지만, 드라마든 책이든 상관없이 모든 매체에서 만나 꾸준히 상상할 것이다.
이건 언제 꿈꾸어도 마음이 콩닥거리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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