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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가는 '말'이 고와야 모두가 좋다

'말'은 인간의 표현수단 중 가장 기초적인 방법에 해당된다.
여기에 손짓, 발짓, 표정이 섞여 그 사람의 표현이 더 풍부하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말이란 인간이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근간이 되는 요소다.

그런데 간혹가다 사람들은 '말'이란 수단을 거칠게 사용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엊그제 스브스 '짝'에 출연하신 남자4호분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자리에서 그의 발언은 무리수가 있지 않았나.
보는 내가 안절부절못해서 그의 '말' 상대를 걱정하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2년전 물류센터 알바하면서 만난 콧털 아저씨가 생각났다.
(단순히 콧털이 있어서 그리 불렀다. 그리고 콧털은 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나는 오전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하는 알바생이었고, 콧털아저씨는 본업을 마친 후 일하시는 알바생이셨다.
콧털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투잡을 하시는 아저씨들이 그곳엔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일하시는 아주머니나 알바하는 오빠들이 유난히 콧털아저씨를 싫어했다.
더러 나보고 '저 아저씨는 상대 안하는게 좋으니깐, 말 걸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 이렇게 말해줄 정도였다.
왜 그럴까 궁금했지만 나의 호기심은 머지않아 풀렸다.

저녁을 먹으며 야간작업을 준비하는 나와 오빠들에게 콧털아저씨는 매번 말을 거셨다.
문제는 그 '말'에 있었다.
욕도 굉장히 잘하시고, 같은 말도 비꼬아 하는 버릇에 듣는 사람이 기분나빠 상대하길 꺼려했던 것이다.
나도 일을 시작한 얼마동안은 아저씨를 피하며, 걸어오는 말에 대답을 뭉그뜨리곤 했다.

그러길 한달. 우연히 아저씨가 물류 알바를 시작한 계기를 듣게 되었다.
알고보니 콧털 아저씨는 두 딸을 키우는 싱글파파셨다.
상처를 남겨준 아이들에게 미안해, 콧털 아저씨는 두 딸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세 명이 한달동안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한국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면 아이들에게 좋을것이란 그의 부정(父情)이 투잡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해있었던 것 같다.
거칠게만 느껴지고, 무서웠던 콧털 아저씨가 180도 다르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후로도 아저씨의 '말'은 여전히 투박하고 욕이 난무했지만, 전처럼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잣대가 됨은 분명하다.
하지만 콧털 아저씨처럼 '말'이 그 사람 전부를 표현하는 건 아닐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이 끝날 때쯤 알바도 같이 끝나가는 막바지에, 콧털아저씨는 떠나가는 알바생들을 일일이 챙겨주셨다.
밥을 얻어먹는 알바생도 있었고, 선물을 받는 알바생도 있었다.
나는 콧털아저씨에게 립밥과 책을 받았다.
일하는 매일 나에게 '기지배가 되서 입술이 그게뭐냐, 쥐어 뜯어갔고. 그래서 시집이나 가겠냐' 이러시면
나는 속으로 '요즘 때가 어느때인데, 기지배가 뭐야. 저건 여자를 무시하는 발언이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카드와 함께 선물을 받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항상 투닥거리고, 시비조인 말투와 달리 그는 주변을 걱정하는 마음 한가득을 가졌다.
말씀을 조금만 따뜻하게 하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텐데, 그의 '말'은 그의 본심을 반감시키는 수단밖에 되지 않았다.

남자4호분도 그러실거란 생각이 든다.
속으로 그렇지 않지만,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그를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어차피 내뱉는 '말'에 상대를 조금만 신경 쓴다면, 코털아저씨와 4호분이 받는 오해는 없지 않을까.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듯이, 괜히 낯간지럽다며 무심하게 뱉는 말보단 부드럽게 말하자.
마음과 어긋난 말은 상대에게 상처만 준다.
만약 내가 콧털아저씨의 사연이나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난 끝까지 그를 싫어했을 것이다.
비뚤은 말대신 진심어린 '말'이 나를 표현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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