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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27번째 내 생일

올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이다. 거기에 8일이 지나 오늘 내 생일이 되었다, 

벌써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나이를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었나 가물거리는 게 왜이리 서글프던지.


매일 반복되는 백수의 일상이지만 오늘 만큼은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로 전날까지 굳게 마음 먹었다.

좋아하는 카레우동도 먹고, 스스로에게 책도 선물하고, 방송국 구경도 괜히 가볼까 생각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것은 당연한 논리다. 

잔뜩 끄적여 놓은 거창한 계획 중 실천한 것은 책 구매가 전부다.


의미있는 생일을 보내기 위해 평소에 부족한 철분을 삶은 계란과 두유로 급하게 충전하고 헌혈의 집을 찾았지만, 선천적으로 얇은 혈관 때문에 주사바늘은 미처 꽂아보지도 못했다.


첫 번째 미션 실패.


평소에 책을 빌려 보는게 전부였던 터라 새 책 사는 것이 나에겐 큰 맘을 먹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쿨하고, 나이스하게 북스리브로를 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결국 간 곳은 알라딘 중고서점.

최근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와 우울할 때마다 펼쳐 보려고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마음 먹다' 두 권을 골랐다.

내가 나에게 쓰는 오글거리는 편지는 덤이고.


친구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축하를 받았지만 , 한 해 잘 버텼다는 위로와 탄생의 축하를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내년 생일에 이 편지를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까.


어쨌든 두 번째 미션은 반만 성공.


헌혈을 하지 못한게 꽤나 충격적이고 마음에 걸렸다. 

터벅터벅 수원역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철분만 신경쓰고 혈관은 방치한 내 스스로가 어찌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러다 역내에서 장애인과 관련해 무언가 홍보하시는 분들을 보았다.

평소에 그런 곳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무엇 때문인지, 제발로 찾아가 어디에서 오셨냐고 내가 먼저 물어봤다.


알고보니 장애인 모호 및 재활 시설인 승가원의 새로운 터를 지어주기 위해 필요한 후원을 홍보하고 계셨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승가원을 본 기억이 있어 괜히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것때문인지 아님 무엇에 홀렸는지 사회복지사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정기후원으로 매달 만원씩 내기로 했다. 

없는 살림에 빠듯하긴 하지만, 군것질 줄이면 괜찮을거야 스스로 다독이면서 후딱 신청하고 왔다.


편지만큼 오그라들지만 이왕 태어난 날에 남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어설픈 정의감이 들어 그랬다.

이왕 시작한 후원이나 책임감을 갖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도와줘야 할 텐데. 

시사교양 피디를 지망하면서 남에게 왜이리 인색했는지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이중인격 같기도 해서 고민이었던 적도 있었다.


무언가 알차게 보내야 할 것만 같아서 엄청나게 부담스럽던 하루가 지났다. 

생일이라 괜시리 기대되고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그러지만도 못해서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아이 같은데, 나도 모르게 내 정신은 나이를 먹고 있었던게 아닐까.


결론적으로!

넌 잘 태어났어. 그러니 밥값은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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